그래픽 노블 전문 서점 ‘그래픽’

“어른만 들어오세요”

두툼한 종이사전의 단면을 모티브로 지은 서점 그래픽 외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회나무길 끝자락,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층층이 쌓여 올라간, 세로로 결이 난 흰색 건물이 소라고둥 같기도 하고 케이크나 두꺼운 책을 연상하게도 한다. 독특한 외형 덕분에 ‘소라빌딩’ ‘경리단 구겐하임’ 등으로 불리며 이태원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그래픽 노블 전문 서점 ‘그래픽’이다.  

예사롭지 않은 외벽을 따라 건물 옆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어둡고 고요한 복도가 나타났다. 좁다란 복도를 걸으며 숨을 고르는 사이 자동문이 열리고 이윽고 환한 서점 내부가 펼쳐졌다. 바깥의 무더위 따윈 잊을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공간엔 책장마다 아트북과 그래픽 노블로 가득했다. 중앙 계단 옆 벽면에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걸려 있어 도서관인지 갤러리인지 헷갈릴 정도. 커다란 테이블 주변으로는 등받이가 있는 나무의자부터 푹신한 소파까지 독서하며 쉬어 갈 수 있는 장치들이 넉넉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멋스러운 공간에 넋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서점 초입 데스크에 서 있던 책방지기 박성준 매니저가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서점 그래픽은 주말마다 줄 서서 입장할 만큼 인기가 많다. 쾌적한 독서를 위해 인원 제한을 두는데, 만석일 경우 대기 목록에 휴대폰 번호를 남겨두면 입장 순서에 따라 문자 알림을 보내준다. 

“1층에는 아트북이나 직원 추천 도서를 비치했고, 2층에는 만화, 그래픽 노블이 있습니다. 3층에는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해외 도서를 가져다놓았고요. 다양한 장르의 그래픽 서적이 있으니 취향것 골라보셔도 좋습니다.” 

책방지기의 안내를 따라 소라고둥 같은 나선 모양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니 천장의 창으로 한여름 뙤약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슬며시 다가온 그가 “비가 올 때 더 운치 있다”고 귀띔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책에만 몰입할 수 있는 공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지향합니다.”  

그래픽 서점의 슬로건은 ‘어른들의 놀이터’다. 어릴 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놀이터의 경험처럼, 공간에 들어선 순간 책에 빠져들어 바깥세상을 잊게 하는 것이 이들이 바라는 바다. 실제로 1만 5000원의 입장료를 내면 시간제한 없이 마음껏 머물며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다. 마치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을 사는 것처럼. 커피와 음료도 무제한 즐길 수 있으며, 위스키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서점 그래픽이 공간을 기획하면서 주목한 건 ‘문화 나눔’이다. 박성준 매니저는 “만화라는 장르가 저평가된 부분이 많다”며 “만화책 중에는 작품성도 있고 나름의 철학과 세계관, 예술성이 담긴 책이 많은데, 이러한 장점을 알리고 함께 누리고자 공간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책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책방지기 박성준 매니저. 그는 책이 거대한 숲과 같다고 말한다. 숲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식물이 존재하듯 책 안에 갖가지 이야기가 심어져 있다는 것. 그는 서점 그래픽이 단순한 책방을 넘어 책이라는 숲에서 함께 영감을 주고받고 소통하며 취향 공동체로 연대하는 공간이길 바란다. 

1일 입장권 1만 5000원에 각종 음료와 커피, 다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아트북과 그래픽 노블, 만화책 등 4000여 권의 책이 비치된 책장.

서점 문을 연 첫해는 만화나 그래픽 노블을 소개하며 공간의 입지를 다졌다면, 올해부터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나 고객 체험 행사를 통해 문화 나눔의 정신을 더욱 확고히 가져가고 있다. 그동안 그래픽 아티스트 콰야, 사이먼 고, 김덕환 작가의 전시를 진행했고, 일러스트레이터나 만화가 지망생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는 등 고객과 교류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만화책은 흥미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읽는 행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만화책이 주는 상상력은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와 이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릴 적 놀이터에서 맘껏 놀며 창의력을 길러왔습니다. 서점 그래픽 또한 책을 통해 영감을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며 재밌고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서점 그래픽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 070-4070-0204

[출처] 탑클래스 TOP Class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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