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질주에 맞서 일하는 세 가지 방법

'우선 기계를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 활용 수준을 최소 1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

0과 1은 다르다. 0은 아무리 곱해도 0이지만, 1은 곱하면 곱한 만큼 늘어난다.

문장을 생성해주는 챗GPT나 그림을 그려주는 달리(DALL·E)를 써보는,

즉 1의 문턱을 넘는 게 중요하다.'

​2016년 3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취재 현장.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지치지 않는 기계의 힘이었다. 그해 이세돌 프로가 겨루던 슈퍼컴퓨터는 인정도 사정도 없었다. 기계의 힘은 예상 밖으로 강력했고 프레스룸에서는 놀란 인간 기자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인정(人情)과 사정(事情)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면면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당시 이세돌 프로는 어린 딸의 손을 꼭 잡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다. 천진난만한 딸이 옆에 없었다면, 그의 목소리와 손은 더 떨렸을지 모른다.  

두 시간 남짓 되는 시간이 마치 2분처럼 흐르던 대국 와중에 이세돌 프로는 갑자기 복도로 뛰쳐나갔다. 급하게 화장실에 다녀온 그는 각성에 도움이 될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흑돌을 다시 쥐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기억에 남는다. 

대회가 끝나고 1년 후, 당시 주무부처 최고위 관계자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대회 당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알파고를 이끌던 구글의 딥마인드팀 수장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조찬을 했다. 그에 따르면, 슈미트 회장과 하사비스 CEO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에릭 슈미트 : 알파고가 바둑을 얼마나 잘 두는 건가요?

데미스 하사비스 : 인간계에서는 단(段)이라는 게 있지요. 알파고는 일주일에 한 단씩 올라갑니다.

인공지능은 거대한 슈퍼컴퓨터와 그 위에 올라가는 잘 짜인 소프트웨어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기계(machine)’라고 부른다. 18세기 발명된 증기기관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다면, 20세기 발명된 컴퓨터는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신해준다.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디지털 이코노미 랩 소장은 증기기관이 촉발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1차 기계 시대, 컴퓨터가 촉발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2차 기계 시대라고 구분한다. 

기계 발명의 속도 : 지수 증가

제2의 기계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단 한 가지 상식을 꼽으라면, ‘지수 증가(exponential increase)’라는 단어를 들고 싶다. 기하급수로 증가한다고 표현하는 지수 증가의 위력을 이해한다면, 기계의 무서운 질주를 감히 상상해볼 수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한 우화가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2000년에 쓴 《영적 기계의 시대: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때(The Age of Spiritual Machines: When Computers Exceed Human Intelligence)》에는 ‘체스판 후반부의 비유’가 등장한다. 황제는 체스 게임을 너무나 좋아해 발명자에게 보상으로 무엇을 받았으면 좋겠는지 말하라고 한다. 이에 체스 발명자는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쌀을 달라고 답했다. 

“체스판의 첫 번째 사각형에 쌀을 한 톨 놓고, 두 번째에는 두 톨, 세 번째에는 네 톨과 같이 이전에 둔 쌀의 양보다 정확히 두 배가 늘어나도록 다음 체스판 사각형에 놓아서 저에게 주십시오.”

황제는 보상이 작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규칙에 동의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두 배씩 늘어나는 쌀이 체스판 서른두 번째 사각형(체스판 후반부)을 지나자, 황제는 발명자에게 40억 톨의 쌀을 줘야 했다. 계속 두 배씩 주다가는 에베레스트산보다 높은 쌀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결국 황제가 파산했다는 버전과 황제가 자신을 놀린 발명자의 목을 베었다는 두 가지 결말로 전해진다.

오늘날 기계의 발전이 체스판 후반부 게임과 같다. 작은 한 톨의 쌀이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쌀더미를 만들 수 있듯, 컴퓨터의 발전은 과거에는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2006년 레이 커즈와일은 그 유명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도 내놓았다. 특이점이란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어 새 문명을 생산해나가는 시점을 의미한다. 커즈와일은 이 특이점에서 노화와 질병이 사라지는 유토피아가 도래한다고 보고 있다. 그가 특이점이 올 때까지 생존하기 위해 하루에 먹는 영양제는 약 100알, 여기에 쓰는 비용은 연간 11억 원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커즈와일은 2029년이면 영화 〈그녀(Her)〉가 현실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기계 지능의 지수 증가는 명명백백한 현실이 되었다. 엉터리 번역 문장을 내놓던 기계 번역이 어느 순간 전문가 뺨치는 번역, 요약, 개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챗GPT가 각양각색의 시나리오까지 척척 써내고 있다. 올해 할리우드 양대 조합의 대대적 파업이 우리에게도 ‘산 너머 불 구경’이 아닌 이유다. 작가조합은 인공지능을 대본 작성에 활용하는 것을 제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배우조합은 생성 AI를 통한 복제물을 작품에 사용할 때 사용량에 비례한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알파고가 인간과 대결에서 승리한 지 7년,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가 세상에 나온 지 1년 만에 기계가 인간을 위협할 가능성을 놓고 테크 엘리트 사이에서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체스판 후반부의 그 후반부에서 기술 질주 속도는 실로 가공할 만한 수준임이 확실하다.

 '필요한 것은 ‘축적’이다.

인공지능은 역설적이게도 마스터(master, 대가)만 필요로 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초·중급 개발자, 작가, 기자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아키텍처를 설계할 수 있는 개발자, 세상 흐름과 조우하며

탁월한 문장과 구성을 만들어내는 작가,

팩트를 끝까지 확인하는 기자는 대체하지 못한다.

인간이 마스터 수준에 이르려면 누구든 그 어떤 분야에서건

양질 전환에 이르는 상당한 수준의 작업량을 쌓아야 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일하려면

인공지능 시대, 인정과 사정을 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기계를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 활용 수준을 최소 1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 0과 1은 다르다. 0은 아무리 곱해도 0이지만, 1은 곱하면 곱한 만큼 늘어난다. 문장을 생성해주는 챗GPT나 그림을 그려주는 달리(DALL·E)를 써보는, 즉 1의 문턱을 넘는 게 중요하다. 최근 만난 찰리 베켓 런던정치경제대(LSE)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챗GPT 이후 AI를 ‘뉴(new) AI’라고 정의한다. 데이터 분석 도구와 코딩 언어를 알아야 다룰 수 있었던 ‘올드(old) AI’와 달리 뉴 AI는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AI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이 기계를 아는 첫걸음이다. 

두 번째는 우리 인간이 해온 모든 일의 프로세스를 다음과 같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부분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을 인공지능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부분을 인공지능에 맡겨둘 수 없는지를 따져보고 작업 순서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관혼상제, 일사분란한 조직문화,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인식,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주위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에서도 중요할까? 그동안 하찮게 여겨온 것들을 계속 무시해도 될까? 이렇게 저렇게 물음표를 달아보는 것이다. 

심지어 정치 시스템마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작금의 정치 시스템은 급변하는 기계 주도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줄 수 없으며, 대규모 실업 사태를 맞이할 인간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그래도 축적이다. 인공지능은 역설적이게도 마스터(master, 대가)만 필요로 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초·중급 개발자, 작가, 기자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아키텍처를 설계할 수 있는 개발자, 세상 흐름과 조우하며 탁월한 문장과 구성을 만들어내는 작가, 팩트를 끝까지 확인하는 기자는 대체하지 못한다. 인간이 마스터 수준에 이르려면 누구든 그 어떤 분야에서건 양질(良質) 전환에 이르는 상당한 수준의 작업량을 쌓아야 한다. 

인턴일 때, 입사 초기 회사원일 때 많은 양의 허드렛일을 해보지 않는다면, 이를 통해 그 일의 절차를 낱낱이 파악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인공지능의 오류를 판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에게 제대로 된 지시를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이때의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는 공자의 말씀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빛나는 금언이다.

새로운 세상에 맞설 용기

2017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인공지능학회 뉴립스(NeurlPS)에서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필요한 건 오직 어텐션(Attention is All You Need)’. 이 논문에서 소개한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는 챗GPT,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깃허브 코파일럿 등 오늘날 인공지능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이 논문의 제목을 오마주한다면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용기가 없다면 인공지능을 배우고 기존 규칙과 프로세스를 의심하고 새롭게 정의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는 ‘위험 감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과거와 현재에는 없었던 ‘어떤 다른 일’이 도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배나 동료가 가보지 않은 길, 그게 일의 미래다. 그 길에 들어설 용기가 있는지 자문해보자. 

[출처] 탑클래스 TOP Class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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