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읽다 _ 강아지의 사랑으로 가득한 나날들 _ 허남웅 영화평론가

강아지가 중심에 서는 영화가 부쩍 많아진 분위기이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의 격언을 인용한 뤽 베송 감독의 <도그맨>(2023)은 불행했던 한 남자가개들로 인해 구원받는 삶을 다뤘다. 핀란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에는 해고로 힘들어하는 여자 주인공이 강아지를 입양하며 ‘채플린’이라고 이름 지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찰리 채플린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의 영화가 주는 코믹하고 따뜻한 느낌처럼 강아지가 등장하는 영화나 장면은 확실히 보는 사람의 눈을 정화하고 마음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다. 

최근에 한국도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반가워할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개의 나날’을 뜻하는 제목의 <도그데이즈>다. 제목은 극 중 강아지 병원의 간판이다. 강아지에 애정을 갖고 병원을 운영하는 진영(김서형)은 강아지 소음과 배설물로 앙심을 품은 건물주 민상(유해진)에게 재계약 불가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 병원을 찾는 손님 중에 민서(윤여정)가 있는데 잘나가는 건축가다. 애견 동반 호텔을 기획하고 있는 민상은 민서와 협업하고 싶어 진영에게 만남을 주선해 달라며 어려운 부탁을 건넨다. 이를 계기로 진영과 민상은 등을 돌린 관계에서 손을 맞잡는 사이로 발전한다.

전혀 생판인 타인이 하나처럼 엮인 이 영화의 설정은 줄을 매개로 연결된 사람과 강아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줄거리에 언급된 인물 외에 또 다른 캐릭터들의 연루를 통해 이 줄의 관계가 더 길게 이어졌으면 바라는 것이 <도그데이즈>의 입장이다. 민서가 진영의 동물 병원에 방문했던 건 반려견 ‘완다’ 때문이었는데, 지병을 갖고 있던 민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고 음식 배달을 하던 진우(탕준상)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 와중에 완다는 홀로 거리를 방황하던 중 정아(김윤진)와 선용(정성화) 부부가 입양한 지유(윤채나)의 품에서 새로운 개의 삶을 이어간다.

강아지의 품성처럼 이 영화가 드러내는 사랑의 성격은 <도그데이즈>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입양의 설정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극 중 사랑의 키워드는 ‘대가 없는’, ‘무조건적인’, ‘손해를 아까워하지 않는’ 절대적인 형태다. 정아와 선용이 지유를 입양한 것처럼 지유는 새로 맞이한 완다를 가족인 것처럼 세심하게 보살피고 아낀다. 민서는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조각을 하는 진우의 사정을 알아보고는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며 완다를 잃어 시름에 빠진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타인이 내게 뭔가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보답한다는 차원을 넘어 함께하는 상대이기에 나눔을 하는 사랑이 이 영화가 강아지에 주목한 이유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TV 프로그램처럼 <도그데이즈>에는 악한이 등장하지 않는다. 강아지가 사람에 의지하듯 극 중 인물들 또한 강아지에 위안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그런 감정이 사람 따로, 강아지 따로 구별되지 않고 사랑 안에 하나로 합쳐진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강아지 Dog’는 사랑을 은유하는 일종의 절대 명사이고, 사랑으로 충만한 ‘날들 Days’이 이 사회에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을 두 단어를 띄어쓰기하지 않는 형태의 제목으로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도그데이즈>로 장편 연출 데뷔한 김덕민 감독은 “모두에게 모닥불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따뜻한 마음이 드는 제작 의도를 밝혔다.

완성도와 독창성 면에서 <도그데이즈>는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전개 역시 예상 가능하게 흘러가기는 해도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만큼은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가 강아지에게 마음을 뺏기는 것은 귀여운 외모 외에도 강아지가 전달하는 사랑의 가치 때문이다. 강아지의 감정에는 전혀 계산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 성공과 돈이 최우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관계는 또 하나의 교환 가치이자 계산속이다. 그런 피상적인 관계에서 감정은 차가워지고 사랑은 소수의 것으로 전락한다. <도그데이즈>는 그렇게 상처받은 속을 강아지로 치료하자는 일차원적 의미를 넘어 강아지와 같은 마음으로 따뜻한 관계를 복원하자는데 더 중점을 두고 관객과 더 길게 연결되려고 한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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