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지금, 여기, 다시 / 고선웅 연출가·극작가

연극은 삶에, 삶은 연극에 화답하며 살뜰히도 오늘을 빚어낸다. 이 뜨거운 판 위에서 연출가 고선웅(52)은 무대와 객석의 간극을 좁혀가며 삶의 이면과 측면을 정면으로 비춘다. 무대 장인의 웅숭깊은 작품세계는 연극 <푸르른 날에><홍도><리어외전><낙타상자><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뮤지컬 <아리랑>,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오페라 <1945> 등과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각색과 연출의 ‘품’과 ‘격’을 높여왔다. 소위 잘 쓰고, 잘 만드는 작가이자 연출가인 그는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연극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20여 년간 특유의 연극 문법과 언어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아온 그를 서울 모처에 있는 극공작소 ‘마방진’에서 만나보았다. 극단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판화 <멜랑콜리아 1>. 잠시 그림 속 마방진(魔方陣)을 들여다보며 창단 15주년이 된 ‘마방진’으로 인터뷰의 판을 열어보았다. 

“원래 이름은 ‘이빨과 심장’이었어요. 이빨처럼 심장처럼 살아야겠다고 낙서한 적이 있는데, 작가를 하려면 정말 이빨을 꽉 물고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균일한 에너지와 심장 박동이 있어야 계속 뛸 수 있잖아요. 사실 젊은 날의 객기였고, 시간이 지나면 경박해 보이겠더라고요(웃음). 마방진이라는 이름은 연극과 잘 맞았죠. 마법적인 숫자의 합이 스도쿠처럼 딱 떨어져야 하니까요.”

그는 연극을 합(合)의 미학, 즉 “기운의 합을 통일하며 전체 합을 맞추는 작업”이라고 했다. 일정한 룰이 부재한 상태에서 배우의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 문제가 되는데, 한 배우의 호흡이 늘어져도 상대 배우가 균형을 맞추게 된다면 러닝타임이라는 전체의 합이 같아질 수 있다는 것. 

“관객도 합의 요소 중 하나죠. 연극은 수학적인 마인드로 접근해야 해요. 영화와는 달리 가장 슬픈 순간을 경험해도 두 달 후가 공연이라 감정의 진폭이 많아지는데, 그런 작업을 거쳐 (공연) 한 달간 그 타임에는 죽음 앞에서 꼭 슬퍼해야 하니 감정을 어떻게 표출할지가 관건이죠. 그래서 연극에는 메소드(method)가 필요해요. 밀도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즐겁게 연습해야 그 에너지가 공연까지 이어지고요. 뭐든 지치지 않고 그냥 하는 거죠(웃음).”

최근작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중국의 잡극(雜劇) <조씨고아 趙氏孤兒>를 원작으로 하며 원대의 극작가 기군상이 사마천의 <사기>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동양의 햄릿’으로도 불리는 이 고전은 어떻게 동시대성을 확보했을까. 

“형식적으로는 연극의 원형성과 본형을 보여주고, 내용적으로도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죠. 초연 당시 IS 문제가 터졌어요. 잘못된 신념으로 기자를 참수하는데, 그들의 적이 미국이나 다른 어디라고 해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건 매우 잘못된 복수의 방식이죠. 그저 직장인으로서 현장에 간 저널리스트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죠. 탐욕과 이기주의, 잔인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에요.”

법가(法家) 사상이 국가 통치의 엄격한 지배 사상이었던 만큼 이 작품의 서사 구조는 당대 중국 문화의 원형질과 같은 ‘복수’를 중심으로 한다. 그렇다면 ‘복수의 씨앗’은 무엇을 향해 있을까. 어쩌면 그 끝은 텅 빈 무대처럼 내면에 공허한 공터를 내어주며 전율하는 것은 아닐까.  

“복수가 필요하면 해야겠지만 꼭 후련해지는 건 아니죠. 희한하게 잘 안 풀리고 기분이 썩 유쾌하지도 않아요.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잘 따져봐야겠죠. 웬만하면 손해 보고 사는 게 분란도 없고 복도 더 받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우환은 만들지도, 당하지도 말라고 썼죠.”

작품마다 해학미와 비장미가 살아있는 능수능란한 화법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결을 따른 미학적 태도, 적절한 톤앤매너로 담아낸 주제 의식은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세공되었다. 연극적 놀이성을 강조하며 ‘비움’으로 ‘채움’을 보여주는 ‘고선웅식’의 영리한 연출로. 

“극단의 형편도 있겠지만, 비웠을 때 효과가 더 크더라고요. 슬픔을 강조해도 충분히 웃길 수 있고, 상대방은 다른 기분일 수도 있죠. 감정은 상대적이잖아요. 웃다가도 빛의 속도로 슬픔에 훅 들어가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죠. 이화(異化)가 있어야 동화(同化)도 있는 거예요.” 

그의 작품에서는 브레히트적인 요소, 즉 소격 효과(Verfremdungseffekt, 생소화)를 이끌어내는 서사극의 장치가 발견된다. 고정된 객석에서 감정이입을 하며 수동적으로 극을 체험하는 것이 아닌 미니멀리즘으로 수렴된 무대에서 생략된 지문과 플롯을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무대는 하나의 개방된 장(場)이 되고, 관객은 놀이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된다. 

“복잡한 건 가짜라고 봐요. 뭔가에 대한 이유가 장황하면 이상하죠. 연극의 주제도 ‘인간은…’ 하며 모호해지면 전하려는 말도 공염불이 될 수 있어요. 연극은 리얼 타임으로 쫙쫙 가야 하니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형식미를 갖추고 격조 있게 잘 풀어내는 게 중요해요.”

역사의 한복판에서 상실해버린 수많은 개인의 얼굴들은 연극 <푸르른 날에><나는 광주에 없었다>, 뮤지컬 <광주>(10.09~11.08)를 통해 당대와 대면한다. 인간 실존을 향한 삶의 곡선과 직선, 사선과 변곡점은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내재화하며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특별히 사회 문제에 각을 세워서가 아니라 작품은 인연으로 오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본성이 메아리를 울리듯. 평소에는 마음이 평평해도 가끔 뿔룩뿔룩 나올 때가 있잖아요. ‘어떻게 그렇지? 거대한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40년이 지나도 이런 갈등이 반복되니 속상하고 불쾌해요. 결국 전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도 확장될 수 있죠. 불평등, 약자로서의 수모, 갑을 관계 등 말 못 할 사연이 많으니까요. 내 마음에 돌을 던졌으니 파문이 일어나는 거죠.”

연극은 유한한 장소에 생겨난 무한한 내적 공간이다. 한 번 피었다 지는 일회성도 우리 삶과 닮아있다. 그는 연극이라는, 인생이라는 강물 위에 휘황한 인연의 꽃을 피워낸다. 긍정의 힘으로.   

“부정적인 것이 많은 곳에 안테나를 대면 그런 것만 들어오고, 희망적인 마인드로 사이클을 만들면 팀 전체가 같은 주파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죠. 뭐든 그 안에서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야 해요. 저에게 연극은 천직이에요. 어쨌든 이 일을 수행해야겠다는 책임감이 강해지니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막을 내리는 묵자의 독백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그의 연극관을, 삶의 철학을 함의하고 있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 소리에 맞춰 놀다 보니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 (…) 이런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좋은 연출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지금, 여기, 다시, 연극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 시대에 연극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를, 관객에게 소구하는 가치를.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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