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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대전, 몇개나 살아남을까   2020년 03월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지막으로 지상파 TV 드라마를 본 게 10년도 더 됐다. 직장인 이상락씨(37)가 기억하는 그 마지막 드라마는 2010년 11월 첫 방영된 <시크릿 가든>이었다. 처음부터 TV를 멀리했던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본방’을 챙겨볼 정도였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노력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도 몇달 전 휴대전화를 바꾸며 새로 가입한 요금제 때문에 넷플릭스를 무료로 보기 시작한 뒤부터는 여가시간에 태블릿PC의 스크롤을 내리며 볼 만한 콘텐츠를 찾는다. “보려고 하는 드라마 시즌 전편을 한꺼번에 모두 공개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니 난 TV는 좋아했어도 본방 시간을 기다리며 TV 앞에 앉는 거나, 한편이 끝나면 다음 편을 기다려야 하는 게 싫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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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드라마 위주로 넷플릭스를 섭렵한 이씨는 상대적으로 국내 방송사에서 만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른 플랫폼인 웨이브에서도 계정을 만들었다. 프리미엄 요금제 하나만 가입하면 4인까지 계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료는 4분의 1씩 나눠 내면 된다. 계정을 공유하겠다며 생면부지의 이용자들을 초대했다가 돈만 받고 잠적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계정 공유를 원하는 이용자들을 4명씩 묶어주는 서비스까지 있다. 이씨는 “지상파 실시간 방송도 OTT로 볼 수 있으니 매달 2만원 넘게 나가는 통신사 IPTV는 해지했다”고 말했다.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안방극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오버 더 톱’이라는 말 그대로 케이블방송이나 IPTV를 보기 위한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만 연결되면 원하는 영상을 골라볼 수 있는 이 새로운 서비스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OTT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비롯해 국내 OTT 업체 웨이브·티빙·시즌·왓챠 등이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막강한 고유 콘텐츠로 무장한 디즈니 플러스를 비롯해 미국 현지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기를 끈 애플의 애플TV플러스 등이 국내 시장에 진입할 뜻을 내비치고 있어 콘텐츠 산업 전반을 뒤흔들 격변이 예상된다.

지난해 국내 OTT 시장 규모 7801억원

OTT가 별도의 장치 없이도 유·무선 네트워크만 갖춰지면 실시간으로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서비스를 뜻하기 때문에 넓게 보면 유튜브도 OTT 플랫폼 중 하나로 들어간다. 유튜브처럼 무료로 영상을 시청하는 대신 광고에 중점을 둔 OTT를 ‘광고형 OTT’라고 분류하면, 넷플릭스를 위시해 매달 일정액의 이용료를 받고 자사 제공 콘텐츠를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서비스는 ‘구독형 OTT’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한 지난해부터 OTT 열풍 역시 전 세계에 불고 있다. 전 세계 OTT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582억달러(약 64조2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컨설팅 업체 PwC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 전망 2020-2024’를 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OTT 시장은 전년 대비 26% 증가했고, 이 추세는 지속돼 2024년에는 868억달러(약 95조4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시장의 성장세 역시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한 2016년 4884억원 규모였던 국내 OTT 시장은 지난해 7801억원으로 커졌다.

국내에서 시장을 개척한 글로벌 OTT 업체 넷플릭스는 아직까지는 독주를 이어가며 후발주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닐슨코리안클릭이 집계한 지난해 월평균 순이용자 수는 넷플릭스(637만명)가 웨이브(344만명)와 티빙(241만명) 등 국내 OTT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넷플릭스의 독주에 제동을 걸 글로벌 OTT의 상륙이 임박하면서 관련 업계에선 누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 시장을 흔들 힘을 갖춘 대표적인 글로벌 OTT 공룡은 월트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다. 올해 한국 진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디즈니플러스는 2019년 11월 첫선을 보인 이래 미국을 비롯한 3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유료가입자 수를 1년 만에 8680만명까지 늘렸다. 디즈니 고유의 콘텐츠 영역이 픽사의 애니메이션과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스튜디오, <스타워즈> 시리즈 등과 결합해 탄탄한 마니아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OTT 장기 생존의 필수과제인 ‘킬러 콘텐츠’ 확보 측면에서는 굳건한 입지를 마련해둔 셈이다.

여기에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등 전 세계 16억대 이상의 애플 기기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애플TV플러스 역시 국내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월 4.99달러(약 5550원)로 다른 OTT보다 저렴한 이용료와 연간 60억달러(약 6조6830억원)에 달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액을 바탕으로 ‘가성비’ 높은 서비스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와 비슷한 시기인 2019년 11월, 100여개 국가부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애플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정식 서비스 계획을 밝히지 않았으나 애플TV플러스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 심의를 신청한 사실이 드러나 국내 진출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빠른 속도로 재편되는 국내 OTT 업계

글로벌 대기업이 영향력을 뻗치는 데 맞서 국내 기업들도 OTT 시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쿠팡은 미국 OTT 시장에서 가입자 수 기준 넷플릭스에 이은 2위를 달리고 있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유사한 전략으로 승부하고 있다. 월 2900원만 내면 로켓배송 상품을 가격 상관없이 무료 배송하는 기존의 ‘로켓와우’ 회원에게 자사가 새로 출시한 OTT인 쿠팡플레이를 추가금액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게 오리지널 콘텐츠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축적한 콘텐츠를 무료 이용할 수 있게 한 방침을 쏙 빼닮았다.

불과 2년도 되기 전인 2019년 후반만 해도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통신 3사(SKT·KT·LG유플러스) 위주로 초기 시장이 형성됐던 국내 OTT 업계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다. 초기에는 통신업체의 이동통신·IPTV 요금제와 결합해 무료가입자를 불러들이는 데 효과를 본 플랫폼들이 경쟁력을 보였다. 여기에 영화 콘텐츠에서 경쟁력을 보인 왓챠와 tvN과 JTBC 등 케이블 채널 콘텐츠를 내세운 티빙까지 경쟁하며 혼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글로벌 OTT에 쿠팡은 물론 네이버와 카카오까지 가세한 혼전이 올해 들어 더욱 격화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과연 몇개의 업체가 살아남을지도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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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에 있는 넷플릭스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 넷플릭스



단순한 계산으로는 월 2만원 안팎인 케이블방송이나 IPTV 이용료를 감안하면 이를 대체할 OTT에 이용자들이 지불할 액수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OTT 계정 1개를 유지하는 데 드는 최소비용이 3000원대에서 형성돼 있기 때문에 많게는 6개 업체까지 안착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나온다. TV와 셋톱박스가 필요한 케이블·IPTV는 한 가구에 2개 이상 가입할 필요를 못 느끼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는 물론 TV로도 이용할 수 있는 OTT는 여러 계정을 함께 이용하면 더욱 풍부한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OTT의 빠른 확산으로 유료방송 가입자가 줄어들었다. 미국의 전체 케이블방송 가입자는 지난해 1분기 68만명이 감소했다. 미국 1위 유료방송 사업자인 AT&T는 위성방송과 IPTV 부문을 더해 같은 기간 동안 9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가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이런 극적인 변화가 한국에서도 재연될지 여부는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케이블방송 이용료가 인기 채널 몇개만 추가해도 월 100달러를 넘을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이탈이 빨랐으나 국내 사정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OTT 시장의 주 소비층을 이루는 젊은 이용자들 사이에선 OTT 피로감을 호소하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냥 채널을 돌리면서 흥미 있는 내용만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리는 기존의 시청자들은 2시간을 봐도 줄곧 볼 수 있다. 그런데 OTT로 영화 한 편을 보려는 이용자들은 막상 2시간을 작정하고 여기 쏟아야 되나 하는 생각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용국 동국대 교수(신문방송학)의 지적이다. 정 교수 역시 넷플릭스의 모델에서 나타난 오리지널 콘텐츠의 중요성 및 이용 편의성 등의 장점이 OTT 시장의 빠른 성장세를 견인할 것이란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용자의 자발적인 주도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하나하나 고르는 OTT 방식 대신 그저 TV를 틀면 나오는 내용을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꿔가며 보는 비교적 수동적인 방식의 시청행태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 교수는 “게다가 현재로서는 OTT의 추천 알고리즘에 대한 각 시청자의 만족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바탕으로 방송 콘텐츠를 송출하던 방송사 대신 콘텐츠업계의 힘이 더욱 커지는 변화는 뚜렷하게 감지된다. 특히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인 <킹덤> 시리즈나 최근의 <스위트홈> 등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연이어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콘텐츠업계의 역량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데다 방송사와의 갑을관계를 벗어나 전폭적인 제작비 지원을 받으며 OTT용 콘텐츠를 제작하면 잠재력이 더욱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아시아의 콘텐츠 허브로 삼은 넷플릭스를 대표적인 예로 보면 ‘K-콘텐츠’는 가성비가 높은 점에서도 OTT 업체들에게 매력적이다. <스위트홈>의 에피소드 1편당 제작비가 30억원, 시즌1 제작비가 300억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 는 에피소드 1편당 제작비가 100억원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 넷플릭스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한 제작비만 해도 7700억원 이상이라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제작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점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공개가 임박한 <승리호> 외에도 <킹덤: 아신전>, <지옥>, <고요의 바다> 등 한국 오리지널 작품이 줄줄이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콘텐츠업계로서는 향후 몇년 뒤 업계 내 후발주자가 떨어져 나가고 구조조정이 오는 시기가 오더라도 당장 여러 OTT 업체들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며 경쟁하는 동안 투입되는 막대한 제작비로 나름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OTT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몇년 동안은 우리로서도 최대한 자금을 투입해 최고의 퀄리티 있는 작품을 뽑고 그 성과와 높은 평가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도록 도전하는 기회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업계 못지않게 글로벌 OTT의 신규 진입으로 호황을 누리는 번역업계 역시 조심스레 ‘대박’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번역가 중개 에이전시의 한 관계자는 “일감은 밀려 있는데 인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많은 콘텐츠를 다 소화할 동안에 최대한 챙기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콘텐츠업계의 파워 세져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내 문화산업 전반이 장밋빛 미래만을 앞둔 것은 아니다. OTT 산업의 특성상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 특히 미국 기업이 각국에 진출하기가 더 쉽고, 다른 사업들보다 기술적인 진입장벽이나 각 국가의 규제로 인한 장애물도 적다. 게다가 선점효과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이들 글로벌 OTT들은 전 세계에서 확보한 가입자 수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 단가를 낮출 수 있어 경쟁력은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자칫하면 국내 시장이 해외 업체들에 종속될 여지도 크다. 실제로 국내 OTT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웨이브조차 <녹두전>, <꼰대인턴>, <SF8>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지만,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국내 OTT 사이에서 단 한곳으로 모두 합병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상원 경희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에 대한 콘텐츠 유통 의존이 커지면 국내 사업자들의 협상력은 약화될 것이며, 불법적이거나 감당하기 힘든 계약을 종용받을 수 있다”며 “국내 OTT 사업자의 차별화 전략과 함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도 OTT 중심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국내 업체들에 유리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 등 OTT에 대한 규제 최소화와 국내 OTT의 해외 진출 지원을 공언한 정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국내 OTT 시장은 대기업을 등에 업고 과점 구도를 만든 측면도 있기 때문에 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미디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사업자들이 최근 열리는 업계 세미나와 간담회 자리마다 ‘토종 기업 살리기’를 외치면서도 자체 경쟁력을 갖추기보단 서로 먼저 해외 OTT와 제휴하려고 경쟁하는 마당에 ‘토종 OTT라고 무조건 지원을 해주는 게 맞냐’는 지적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6&art_id=202102051453221#csidxccbcfd629437e8d8a345a9e1fe77dee




[출처] 주간경향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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